계암일록 (溪巖日錄)
저자 : 김령 (金坽) / 17세기
(七月) 十九日
朝陰。裴翰林自京回。歷止濯淸。見招。即往見。盖內翰被論而歸。司諫金順命駁之也。午後內翰歸。是日洞內皆會見。以雨終日不散。7월 19일
아침에 흐림. 배 한림裵翰林이 서울에서 돌아오면서 지나는 길에 탁청정濯淸亭에 들러서 나를 부르기에 즉시 보러 갔다. 아마 배 내한裵內翰이 탄핵을 받아 귀향한 모양인데, 사간司諫 김순명金順命의 논박을 받았을 것이다. 오후에 배 내한이 돌아갔다. 이날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였는데 비 때문에 종일 흩어지지 않았다.경당일기 (敬堂日記)
저자 : 장흥효(張興孝) / 17세기
(六月) 七日
天理人欲。同行異情。譬諸水焉。天理水之淸者也。人欲水之濁者也。淘去其濁。則淸者自在。惡其濁而悉去其淸者。非也。不加澄淸之功者。亦非也。6월 7일
천리와 인욕은 행동은 같으나 실정은 다르니 물에 비유된다. 천리는 물이 맑은 것이고 인욕은 물이 흐린 것이다. 그 흐린 것을 가려서 제거하면 맑은 것이 절로 존재한다. 그 흐린 것을 미워하여 그 맑은 것까지 모두 제거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고, 맑게 하려는 공을 더하지 않는 것도 또한 그릇된 것이다.임재일기 (臨齋日記)
저자 : 서찬규(徐贊奎) / 19세기
(三月) 三日
晴。灑掃室堂及庭。與族兄明載氏。展卷相對。誦曾點言志章。坐望山麓。皆春意盎然。益不禁懷人之想。而相說德佑之期逝不至。3월 3일
맑음. 방과 마루, 그리고 뜰에 물을 뿌려 쓸고, 족형 명재씨와 책을 펼쳐놓고 마주 앉아서 증점(曾點)의 언지(言志) 장을 외웠다. 앉아서 산기슭을 바라보니 봄기운이 완연하여 더욱 사람 그리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어, 덕우가 오기로 약속한 때가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다고 함께 이야기 하였다.초간일기 (草澗日記)
저자 : 권문해(權文海) / 16세기
(正月) 四日
晴。鷄龍山祠祭。州官例爲祭官。而新判官時未下來。監司以鎭岑縣監南宮悌差行。夜都事上來于衙軒。飮話至夜深。5월 4일
맑음. 계룡산사鷄龍山祠에 제사를 지냈다. 주관州官이 예에 따라 제관이 되어야 하는데, 신임 판관判官이 아직 내려오지 않아 감사監司가 진잠 현감鎭岑縣監 남궁제南宮悌에게 맡겨 행하였다. 밤에 도사都事가 아헌衙軒으로 올라와서 밤이 깊도록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청대일기 (淸臺日記)
저자 : 권상일(權相一) / 18세기
(二月) 二十三日
萬頃李龍徵潘宗夏過見。正月初爲乞糧。往江原道。由盈越平昌。踰駒嶺。歷順興豊基而來。今初八日。峽中雪積路塞。艱得跋涉。方歸故鄕云。行色極可矜惻。而家中如洗。不得捄助可嘆。2월 23일
만경(萬頃) 이용징(李龍徵)ㆍ반종하(潘宗夏)가 들렀다. 정월 초에 양식을 구걸하러 강원도에 갔다가 영월ㆍ평창을 거쳐 구령(狗嶺)을 넘고, 순흥ㆍ풍기를 거쳐 왔는데, 이달 초8일에 골짜기에 눈이 쌓이고 길이 막혀 간신히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왔으며, 막 고향에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행색이 몹시 불쌍하고 슬프나 집안이 씻은 듯하여 도와줄 수가 없으니 안타깝다.하와일록 (河窩日錄)
저자 : 류의목(柳懿睦) / 19세기
(正月) 初三日
晴。注書叔來問病。因就席。從容言在京事曰。近來朝家權柄。專由主上。卿宰任事之臣。莫敢擅行其意。又曰。前在京師。自上命召抄啓諸臣。責之曰。予聞。爾等驛路往來。濫暴小民云。此後愼勿如是。정월 초3일
맑음. 주서注書 아저씨가 병문안을 왔다. 자리에 앉아 조용히 한양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근래 조정의 권력이 오로지 주상主上에게 나오니 경재卿宰로 일을 맡은 신하들이 감히 자기 생각대로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또 “지난번 한양에 있을 때 임금께서 초계문신抄啓文臣들을 불러 ‘내가 들으니 너희들이 역로驛路를 왕래할 때 소민小民들에게 함부로 포학하게 대하였다고 하니 이 이후로 조심하여 이와 같이 하지 마라.’라고 꾸짖었습니다.”라고 하였다.정탁 (鄭琢) 1526년 ~ 1605년
정탁(1526~1605)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약포(藥圃)•백곡(栢谷)이다.
현감 정원로(鄭元老)의 증손이며, 정이충(鄭以忠)의 둘째 아들이다.
1558년에 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대사헌•우의정 등 주요 관직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모두 치렀고, 저서로 약포집•용사일기•피난행록•정간공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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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학 (權喜學) 1672년 ~ 1742년
권희학(1672~1742)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감고당(感顧堂)이다.
조부는 권홍(權鴻)이고, 아버지는 화성군(花城君) 권명형(權命逈)이다.
1728년 이인좌의 난 때 안성•죽산 등지에서 활약하였으며, 곤양군수•운산군수•장연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감고당집•연행일기•서행일기•남정일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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